KITCHEN TABLE

가을의 전설,

전어

집 나간 며느리도 돌아오게 한다는 그 맛, 며느리 친정 간 사이 문 걸어 잠그고 먹는다는 그 맛. 대가리에 참깨가 서말이라는 그 맛. 전어의 맛이다. 손바닥만 한 생선 한 마리에 깃들어 전해지는 이야기들은 또 얼마나 많은지 전어와 관련된 속담들만 나열해 보아도 전어는 가을의 전설 그 자체이다. 요즘은 인사도 “가을 전어 맛보셨습니까?”이다.

전어의 진짜 맛은 돈맛이다 너도나도 전어예찬이니 한번 먹어볼까 싶어 마트에 들렀다가 그 가격에 화들짝 놀란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십수 년 전만 해도 몇천 원 주면 전어를 한 대야 가득 채워주던 시절이 떠오르기 때문이다. 천한 값에 팔려도 별로 거들떠보지도 않던 값싼 전어가 어쩌다가 이렇게 생선계의 신데렐라로 인생역전을 했을까. 그런데 전어가 싼 생선이었다는 것은 기억의 왜곡이었을 수도 있다.
전어는 돈 전(錢)자를 써서 전어(錢魚)이다. 생김새만 봐서는 전혀 돈과는 연상작용이 일지 않는 자태이다. 너무 잘아서 볼품없어 보이기까지 하는 생선을 하필 돈과 연결지어 전어라고 이름 지었을까. 조선 정조 때 실학자인 서유구는 〈난호어목지>라는 생선 도감을 남겼다. 여기에 전어라는 이름의 유래가 나온다.
“전어는 고기에 가시가 많지만, 육질이 부드럽고 씹어 먹기에 좋으며 기름이 많아 맛이 좋다. 상인들이 소금에 절여 한양으로 가져와 파는데 신분의 높고 낮음을 떠나서 모두 좋아하므로 사는 사람이 값을 따지지 않고 사기 때문에 전어(錢魚)라고 부른다.”
맛이 좋아 부르는 게 값이었다는 의미이다. 이보다 훨씬 앞서 임진왜란 때 쓰여진 피난일기 <쇄미록>에도 “시장에서 전어 큰 것 한 마리에 쌀이 석 되”라는 기록이 나온다. 그 난리 통에도 식량보다 비싼 생선이었다면 괜히 전어라는 이름이 생긴 것은 아니겠다.
이쯤 되면 가을 전어 굽는 맛은 며느리도 돌아오게 만든다는 말은 어쩌면 맛에 대한 예찬이 아닐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비싼 전어도 구워 먹을 만큼 시집의 살림형편이 폈다는 뜻의 은유가 아니었을까. 전어 맛의 정체는 ‘돈맛’이었다.

가을전어 굽는 냄새
그리고 집나간 며느리의 전설
그렇다고 전어가 맛이 없는 생선이라는 말은 아니다. 허영만 작가의 <식객>에서는 전어 굽는 냄새가 사람 목숨을 구하기도 한다. 한강 인도교에 올라가 자살 소동을 벌이는 남자 앞에서 주인공 성찬이 번개탄에 전어를 구우며 살살 회유를 한다. 특히나 가을의 전어 맛은 부정하기 힘들다. 전어가 가을에 맛있는 이유는 지방함량의 차이 때문이다. 가을 전어의 지방함량은 다른 계절에 비해 3배나 높다. 봄부터 여름까지는 산란기인데 이때는 대부분 영양이 알로 가기 때문에 이 시기에 잡힌 전어는 맛도 덜하고 비린내도 많이 난다. 산란을 마치고 활동이 활발해지면 몸에도 지방이 끼기 시작한다.
전어구이를 먹을 때는 대가리까지 먹어야 제대로 먹을 줄 안다는 소리를 듣는다. 그만큼 버릴 게 없는 생선이다.

전어를초고추장에 찍어 먹는다고? 무엇을 먹든 취향대로 먹으면 될 일이라지만 그래도 음식 궁합이라는 것을 무시할 수는 없는 법이다. 요즘 전어 먹으러 식당에 가면 초고추장과 상치가 기본 안주처럼 나오는데 이것만큼은 바로잡을 일이다. 가을 전어 맛이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단연 ‘고소한 맛’이다. 식초와 고소한 맛이 어울리기나 한가. 초장은 전어의 고소한 맛을 작정하고 죽이는 일등공신이다.
그렇다면 전어는 무엇에 찍어 먹어야 하나. 된장이다. 된장의 고소한 맛은 전어의 고소한 맛과 만나면 시너지가 발생한다.
그런데 전어에게도 치명적인 단점이 있으니 바로 비린내이다. 상추로 감추기엔 어림도 없다. 전어의 비린내는 깻잎으로 해결해야 한다. 깻잎 한 장에 전어 두어 점을 올린 후 된장을 바르고 마늘과 매운 고추를 넣어서 먹으면 세상에 없는 고소한 맛이 완성된다. 이것이 전어회의 참맛이다.

임금님 수랏상에 오르던전어젓

전어가 회와 구이가 전부라고 여긴다면 그것도 오해이다. 전어는 젓갈로도 유명하다. 전어 새끼로 만든 엽삭젓, 내장만 모아서 만든 전어속젓 등이 있다. 특히 전어 내장 중에서도 ‘밤’으로 만든 전어밤젓은 임금님 수라상에 진상될 정도로 아주 귀한 젓갈이다. 밤이란 전어의 위장을 말하는데 타원형의 완두콩만 한 크기이다. 전어살은 말려 한약재로 쓰기도 한다. 기를 북돋우며 해독하는 효능이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여름의 폭염을 견디느라 체력을 소진한 사람들이라면 가을 전어를 먹어야 하는 또 한 가지 이유이다

 

전어회무침

재료 : 전어, 백오이, 양파, 대파, 쑥갓,
양념장 : 간장 5T, 고춧가루 3T, 식초 3T, 매실청 3T, 다진 마늘 1T, 다진 생강 약간,
까나리액젓 약간, 참기름, 통깨


만드는 법
1. 비늘, 머리, 꼬리, 지느러미, 내장을 제거한 후 흐르는 물에 씻어서 물기를 뺀다.
2. 전어를 1cm 정도의 두께로 자른다.
3. 백오이는 반으로 갈라 어슷 쓸고, 양파는 슬라이스하여 찬물에 담가 매운 맛을 제거한다.
4. 볼에 참기름과 통째를 제외한 분량의 양념장을 모두 섞는다.
5. 4에 전어와 야채를 넣어 버무린다.
6. 참기름과 통깨를 넣어 마무리한다.

전어조림

재료 : 전어, 무, 대파, 홍고추
양념장 : 간장 3T, 맛술 2T, 다진 마늘 1T, 고춧가루 1T, 설탕 약간, 후춧가루 약간

만드는 법
1. 손질한 전어에 칼집을 넣는다.
2. 무는 큼직하게 썰고, 대파와 홍고추는 어슷하게 썬다.
3. 냄비에 무를 깔고 그 위에 전어를 올린다.
4. 양념장을 반만 넣고 끓으면 나머지 양념장을 넣고 물 1컵을 부어 끓인다.
5. 국물을 끼얹어가며 끓이다가 대파와 홍고추를 넣고 한소끔 더 끓여 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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