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pecial Issue

식품업계의 핫 트렌드,

비건

최근 국내에서도 비건(Vegan)이 새로운 트렌드로 떠오르면서 국내 식품업계가 비건식품 개발에 속속 나서고 있다. 국내의 채식주의자는 전체 인구의 약 2% 수준에 불과하지만 꾸준히 증가하는 추세이다. 이런 트렌드에 따라 국내 식음료 업계는 채식시장을 주시, 관련 제품을 잇따라 출시하고 있는 가운데 올해 4월 롯데푸드에서도 식물성 대체육류 브랜드 '엔네이처 제로미트'를 출시하며 비건 시장 공략에 나섰다. 이에 롯데푸드 마케팅부문장 이경석 상무를 만나 비건 시장의 현황에 대해 들어보았다.

식문화에 대한 성찰, 비건에 눈뜨다

윤리적·환경적 소비의 확산으로 전 세계적으로 대체육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건강상의 이유나 개인적 신념에서 고기를 멀리하는 소비자들뿐만 아니라 공장식 축산이 환경에 미치는 영향, 동물의 비윤리적 사육방식에 대한 문제의식에서 비롯된 변화이다. 이러한 변화는 단순한 먹거리 선호의 문제를 넘어 식문화에 대한 성찰로 이어지고 있다.

식물성 대체육 제품들은 미국과 유럽에서 주로 생산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글로벌 시장조사정보 플랫폼 리포트 바이어(Report Buyer)에 따르면 전 세계에서 북미와 유럽의 식물성 대체육의 생산 비율은 각각 33%, 39%로 집계됐다. 아시아·태평양(17%), 남미(9%) 등과 비교할 때 독보적인 점유율이다. 그렇다면 우리나라의 상황은 어떨까. 한국채식연합에 따르면 2018년 기준으로 국내 채식인구는 100만~150만 명으로 10년 전인 2008년 15만 명에 비해 10배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해마다 발생하는 전염병으로 인해 육류를 기피하는 경향, 육가공 제품의 첨가제 안전성 논란 등의 영향이 크다. 이에 따라 국내 식품업계에서도 식물성 대체육류에 대한 관심이 부쩍 늘어났다. 식물성 대체육류란 밀, 콩 등에서 추출한 식물성 단백질을 이용해 고기와 가까운 맛과 식감을 구현한 식품을 말한다. 과거에도 식물성 대체육 제품들이 출시되었으나 맛이 고기 맛에 크게 못 미치는 수준이었다. 현재도 중소기업을 중심으로 콩을 원료로 한 제품들이 출시되었으나 아직 비건 제품의 출시가 활발한 편은 아니다. CJ제일제당에서 자체 식품연구소를 통해 식물성 대체육류 개발에 착수했으나 아직 출시 전이다. 올해 3월, 동원F&B가 미국의 식물성 고기 생산업체인 비욘드미트와 국내 독점 공급계약을 맺고 '비욘드버거’ 선보였으나 국내기술로 개발된 제품은 아니다.

비건제품 출시에 속도 내는 롯데푸드 현재로서는 비건 시장에서 가장 적극적이고 발 빠른 행보를 보이는 곳은 롯데푸드이다. 롯데푸드는 1958년 창사 이래 60여 년간 국내 식품산업을 선도해 온 종합식품회사이다. 롯데푸드는 2017년부터 롯데중앙연구소와 협업하기 시작해 자체기술로 식물성 대체육을 개발하는 데 성공했다. 이에 올해 4월 식물성 대체육 브랜드 ‘엔네이처 제로미트’를 런칭하고 '엔네이처 제로미트 너겟'과 '엔네이처 제로미트 까스' 2종을 먼저 선보였다. 너겟과 가스 형태의 제품이라 조리도 매우 간단하다. ‘엔네이처 제로미트 너겟’은 자사 치킨너겟 제품 대비 단백질이 23% 이상 높다. 제품 자체의 콜레스테롤 함량도 0%이다.
기존에 출시된 식물성 대체 육류와의 가장 큰 차이점은 밀 단백질을 이용했다는 점이다. 통밀에서 100% 순식물성 단백질만을 추출해 고기의 근 섬유를 재현하고 닭고기 특유의 쫄깃한 식감을 구현했다. 밀 단백질을 사용했기 때문에 콩 특유의 냄새가 없고, 육류와 흡사한 식감을 즐길 수 있는 것이 장점이다. 또한, 효모 추출물 등으로 고기의 깊은 풍미와 감칠맛을 구현하고, 식물성 오일로 부드러운 육즙의 맛까지 살렸다.

식물성 대체육에 일반적으로 사용되는 콩 단백질 대신 밀 단백질을 선택한 것은 사전 소비자 선호도 조사 결과, 밀 단백질에 대한 선호도가 높다는 것을 확인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우리나라 소비자들이 콩취(콩비린내)에 좀 더 민감한 편입니다. 롯데에서도 2000년대 초반, 콩 단백질을 베이스로 한 햄과 소시지를 출시한 적이 있었으나 콩취가 많이 나서 소비자들에게 오래 사랑받지는 못했어요. 식물성 대체육류라고 하면 보통 콩 단백을 원료로 한 제품을 떠올립니다. 이 경우 콩 비린내에 대한 호불호가 갈리고 식감도 포슬포슬한 편이라 닭고기 고유의 식감을 살리는 데 아쉬운 점이 있습니다. 엔네이처 제로미트는 밀단백질을 기반으로 콩고기 특유의 퍽퍽한 식감을 없애고, 닭고기를 닮은 쫄깃한 식감을 구현한 제품입니다.”
롯데푸드가 출시한 대체육은 미리 말하지 않고 시식을 했을 때는 쉽게 알아채지 못할 정도로 닭고기의 식감과 육질이 비슷하다고 한다.

누가 먼저 리딩할 것인가

롯데푸드의 식물성 대체육 제품은 두 가지 모두 100% 식물 유래 원료만 사용했다는 점을 인정받아 너겟 및 가스류 제품으로는 국내 최초로 한국비건인증원에서 비건 인증도 받았다. 그런데 제품에 ‘비건’이라는 표시를 따로 하지 않았다. 제품 타깃을 제한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인데 이는 해외와 달리 국내의 비건 시장이 충분히 성숙되지 않았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롯데푸드가 비건시장에 뛰어든 이유는 해외시장의 변화에 주목했기 때문이다.
“작년 가을 프랑스 국제 식품전시회(SIAL)에 참관했을 때 비건 트렌드를 확실히 느낄 수 있었어요. 3년 전과 비교하면 확연한 변화였습니다. 전시장의 40% 이상이 비건 제품들의 주를 이루고 있었습니다.”
국내에서도 머지않아 비건 시장이 형성될 것이라는 확신을 가질 수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새로운 길을 낸다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었다고. 자체적인 기술개발에 따른 위험과 부담을 감수하느니 차라리 해외의 유명 대체육 브랜드를 수입하자는 목소리도 있었다.
“유럽의 비건 열풍이 국내에서도 불지에 대한 의구심이 있었어요. 대체육 생산의 공정 자체가 기존제품과 많이 다르고 까다로웠기 때문에 공장에서도 꺼리는 분위기였습니다. 이런 내부의 부정적 인식을 설득해가는 과정이 쉽지만은 않았지만 롯데푸드가 국내 비건 시장을 선도하자는 결론에 이르렀습니다.”

국내 비건 시장,까다롭지만 성장 가능성 커

국내 비건 시장이 성장하려면 극복해야 할 문제들도 있다. 우선 과대광고 등의 우려 때문에 표현의 규제가 까다로운 편이다. 표현의 한계가 있어 제품의 셀링 포인트를 살리기가 어렵다는 것. 이를테면 ‘치킨맛 나는 식물성 대체육류’라는 표현이 허용되지 않으며 치킨 이미지를 넣는 것도 허용되지 않아 소비자들이 맛을 짐작할 수도 없다는 어려움이 있다. 해외시장도 사정은 마찬가지이다. 2019년 EU의 농업위원회(Agriculture committee)는 베지테리언 제품에 Steak, Sausage, Burger와 같은 단어를 제한했다. 또한, 2017년에는 비건 제품에 Milk, Cheese, Yogurt와 같은 유제품에 쓰이는 단어를 사용하는 것은 허용되지 않는다고 판결되었다. 이는 비건 제품을 판매할 때 큰 걸림돌이 되고 있다. 위와 같은 판결을 기반으로 제품 이름 및 라벨링을 Silk 등으로 유사하게 변형하거나 Almond breeze와 같이 기존의 이름을 탈피하여 고유명사화되어 사용되고 있다.

식물성 대체육에 대한 소비자들의 부정적 이미지를 극복하는 것도 숙제이다. 품질이 낮다거나 값이 싸다는 이미지가 형성되어 있는 데다 건강에 좋은 음식은 맛이 없다는 고정관념도 적지 않다. “가장 큰 숙제는 소비자의 인식을 전환하는 것입니다. 소비자에게 긍정적인 측면을 정확하게 전달하고 소비자들이 건강한 식생활을 영위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우리 식품업계의 역할입니다. 당분간은 식물성 대체육이 건강에도 좋고 맛도 좋다는 점을 알리는 데 주력하고 있습니다.” 아직은 소비자들이 일상적으로 구입할 수 있을 만큼 다양한 제품이 나와 있지는 않기 때문에 폭발적으로 성장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 이에 롯데푸드에서는 피자토핑이나 햄버거 패티에 이르기까지 제품 라인업을 확대하여 소비자들이 언제든지 원하는 비건 제품을 구입할 수 있도록 할 계획이라고 말한다. 올해 10월 중에는 스테이크 타입의 제품도 출시를 앞두고 있다. 또한 패스트푸드 프랜차이즈, 편의점 등과 협업하여 비건 햄버거, 비건 도시락 등도 출시할 예정이다. 최근 몇 년 사이에 수도권을 중심으로 비건 레스토랑이 확산되고 있는 것도 좋은 조짐이다. 이런 추세대로라면 내년쯤이면 국내의 비건 시장이 폭발적으로 성장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글. 편집실
촬영. 김재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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