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생활 비타민

열정도 닳아요,
함부로 쓰고 싶지 않아요

‘요즘 젊은것들’은 소크라테스도 이해하지 못한 ‘난해한’ 존재들이었다. “열정도 닳는다. 함부로 쓰다 보면 정말 써야 할 때 쓰지 못하게 된다.”고 말하는 90년대생들과 그들이 알쏭달쏭하다며 혀를 내두르는 기성세대. 90년대생이 본격적으로 사회에 진출하기 시작하면서 직장에서도 이들 사이에 갈등이 불거지기 시작했다. 그들은 도대체 어떤 존재들이며 어떻게 활용해야 할까.

“당신 회사 신입사원들은 어때요?” 요즘 회사마다 과장님들의 관심사가 남의 회사 신입사원 안부라는 우스갯소리가 있다. 똘똘해 보여 뽑아놨더니 일에는 도무지 욕심도 없는 것 같다. 딱 시키는 것만 하고는 ‘이제 뭐 할까요’라는 눈빛으로 앉아있다. 명령 버튼 눌러주기를 기다리는 로봇처럼 앉아 있다가 6시만 되면 뒤도 안 돌아보고 내빼버린다는 것이다. 지난 수십 년 동안 직장인들의 술자리 단골메뉴는 단연 상사 험담이었다. 술자리마다 젊은 사원들 험담이 안줏거리로 오른다는 것이 격세지감이다. 과장님들의 험담은 “우리 때는 안 그랬는데”라는 후렴구로 끝난다. 그 말이 틀린 말도 아니다. 온갖 열정을 쏟아 부으며 없는 일도 만들어 내던 젊은 시절과 비교하면 ‘열정도 닳는다’며 아끼는 모양새니 답답할 따름이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세대 간 마찰은 언제나 존재했다. 고대 아시리아의 비문에도 “요즘 아이들은 버릇이 없다”는 문구가 남아있다고 하고 기원전 400년에 살았던 소크라테스도 “요즘 젊은것들은 싸가지가 없다, 말세다”고 욕을 했다고 알려져 있다. 요즘 ‘과장님들’이나 소크라테스나 ‘젊은 것’들을 보는 어른들의 시각에는 별 차이가 없어 보인다.

뼈를 묻겠다고? 헌신하면 헌 신짝 됩니다! 하지만 요즘 보이는 직장 속 갈등의 양상은 ‘젊은것들은 다 그렇다’는 것만으로는 설명이 부족한 듯하다. ‘90년대생’이라는 말로 통칭되는 요즘 젊은이들의 캐릭터가 형성된 데는 나름의 탄생 배경이 있다.
IMF 외환위기 시절 정리해고를 당한 70년대생의 모습을 봐온 80년대생, 그들의 전철을 밟지 않기 위해 악착같이 자기계발을 하며 스펙을 키웠음에도 불구하고 결국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로 수시로 구조조정을 당하는 모습을 봐온 90년대생들. 그들에게 회사는 나의 생활과 미래를 보장해 주는 곳이 아니었다. 1970~1980년대생들을 반면교사 삼아 1990년대생들이 선택한 길은 9급 공무원이다. 요즘 ‘젊은 것’들 사이에 공시족이 늘어나는 이유이다. 재수, 삼수를 하면서도 노량진을 벗어나지 못한다. 몇 년만 더 빠짝 고생하면 ‘공무원’이라는 안정된 직장을 얻을 것이라는 희망을 버릴 수 없기 때문이다.

공무원의 길을 과감하게(?) 포기하고 회사로 진출한 90년대생은 또 어떤가. 신입사원들의 입사 소감에서 빠지지 않았던 ‘뼈를 묻겠다’는 말은 이미 사라졌다. 요즘 신입사원들은 ‘헌신하면 헌 신짝 된다’고 되받아친다. 언제든지 버려질 수 있다는 불안감을 안고 들어온 이들에게 직장은 그저 직장일 뿐이다. 이러한 세태를 반영한 문화콘 텐츠들도 활발하게 만들어졌는데 <열정 같은 소리 하고 있네>, <하마터면 열심히 살 뻔했다>가 베스트셀러에 오르기도 했다.

공정이 정의이다 90년대생들의 특징은 사회적 문제에 대처하는 방식에서도 드러났다. 기업 내 부조리함을 제보하는 대나무 숲 웹 사이트나 애플리케이션이 늘어난 것, 미투 운동이 이슈가 된 것도 기존에 묵과했던 부조리함을 참지 않고 목소리를 내기 시작하면서부터다. 요즘 취업 시장에 나온 90년대생은 투명하고 윤리적인 기업을 원한다. 어쩌면 이들이 공무원 시험에 목을 매는 것도 ‘유일하게 남아있는 공정한 채용 시스템’이라고 여기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이러한 흐름에 맞춰 대기업 중심으로 채용 불합격자들에게 통보는 물론, 전형별 평가 결과를 피드백해 주는 기업 프로그램이 생겨나고 있다. 롯데그룹의 인사 시스템이 대표적이다. 2014년부터 도입된 ‘불합격자 대상 결과 피드백 프로그램’은 지원자들로부터 큰 호응을 얻고 있다. 이 제도는 불합격자에게 개인 평가 내용을 안내하여 지원자들로 하여금 스스로 강약점을 파악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고자 마련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럼에도 불인간관계에서도 투명성을 지향한다. 그래서 직장에서 ‘아는 후배’라고 따로 불러 챙겨주는 직장 선배도 달갑지 않다. 오히려 이들은 학벌, 나이, 직장, 사는 곳 등의 정보를 드러내지 않고, 모임 주제 따라 취미나 정체성, 생각 등을 나누는 데 초점을 맞추는 모임을 선호한다. 그들이 위로를 받는 것은 디지털 공감 집단이다. 즉, 오프라인 공간에서의 어색한 관계보다 온라인 공간에서의 편하고 느슨한 연대가 더 익숙하다. 인간관계에서 발생하는 감정노동을 바라지 않고 인간관계를 맺을 때도 개인의 관심사를 중심으로 맺기를 좋아한다.


90년대생의 사회 진출이 본격화되면서 이질감을 느끼던 기업들마다 끌어안으려는 노력을 시작했다. 이들의 특성을 오히려 적극적으로 활용해 보겠다는 것이다. 눈에 띄는 변화는 기업마다 시행하는 직원 교육 프로그램에서도 나타난다. LG화학의 경우 신입사원이 ‘밀레니얼 세대와의 행복한 동행’을 주제로 직접 강연하고, 이를 임원 300여 명이 듣는 워크숍을 진행해 화제가 되었다. NH투자증권도 부서장과 예비 리더를 대상으로 하는 리더십 교육의 주제를 ‘90년생을 이해하기’로 잡았다. 포스코도 리더급 직원을 대상으로 ‘밀레니얼 세대 소통 가이드’를 제작해 나눠준 것으로 알려졌다. 기업들마다 앞 다투어 ‘리버스 멘토링’ 제도를 도입하고 있는 것도 눈에 띄는 대목이다. 리버스 멘토링 제도란 후배가 선배에게 최신 트렌드와 문화를 소개하는 프로그램이다. 이런 프로그램을 통해 기성세대들이 젊은 세대를 이해하겠다는 취지이다. 신입사원 교육도 바뀌었다. 기업들마다 신입사원의 의견을 듣는 프로그램이 부쩍 늘어났다. 90년대생이 사업 아이디어를 제안하도록 해 최신 트렌드를 반영하고 업무 참여를 높이기 위해서다. SK그룹에서는 버려지는 플라스틱을 줄이기 위해 유심 플레이트 크기를 반으로 축소하는 신입사원의 아이디어를 그대로 수용해 실제 경영에 반영했다. 아예 인사 제도까지 수정하는 회사도 있다. 사내 부서 이동을 자유롭게 하는 ‘사내공모제도’를 넘어, 최근에는 공개적으로 이직 가능성을 열어 주기도 한다. 신입사원들이 직장에 요구하는 발전 가능성을 열어 둬 직무 몰입을 높이는 방법이다. 개인의 가치를 올리기 위해 열심히 일하는 게 회사의 성장에도 도움이 된다고 판단한 것이다.

글. 편집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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