낯선 길위에서

베를린
한 달쯤 살아보면, 더 좋은 도시

성공과 출세를 위해 청춘을 반납하고 앞만 보고 달려가는 삶이 아니라, 불완전한 삶의 휘청거림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싶다. 업무의 결과물이나 성취감에 집착하는 것이 아니라, 삶의 마디마디를 한 올 한 올 즐기고 곱씹어볼 수 있는 마음의 여유를 가질 때 느낄 수 있는 행복감, 그것이 ‘휘게’가 아닐까. 이제와 돌이켜 생각해 보면 내게 ‘휘게 라이프’를 나도 모르게 실천하도록 만들었던 도시가 바로 베를린이었다.

여행자에게 머무는 여유로움을 가르쳐 준 곳, 프로방스 여행은 어떤 건강보험보다 확실한 마음의 보험이다. 여행의 추억이 언젠간 좌충우돌할 것임에 분명한 미래의 내 지친 어깨를 쓰다듬어줄 것임을 믿는다. 일상 속에서는 설렘을 느끼기가 점점 어려워지지만, 여행하는 동안에는 시도 때도 없이 조금은 주책없이 사소한 자극에도 심장이 두근거린다. 일상 속에서는 외부자극에 마음을 닫아두고 입술을 최대한 한일자로 다무는 것이 자기방어기제가 되지만, 여행하는 동안에는 그 익숙한 자기방어의 자물쇠가 풀려버린다. 파리의 유람선 바또무슈를 타는 사람들은 마치 약속이나 한 듯이 한 번도 만난 적 없는 낯선 여행자들에게 미친 듯이 손을 흔들어준다. 나도 따라서 활짝 웃으며 손을 흔들어주지 않을 수가 없다.
이런 내게 끝없이 천천히 걷고 싶은 여행의 아름다움을 가르쳐준 곳, 다음 목적지에 대한 스트레스 없이 그저 그곳에 머무는 여유로움을 가르쳐준 곳이 바로 프로방스지방이다. 아비뇽, 아를, 레보 드 프로방스, 생 레미 등의 장소들을 둘러보면서 나는 프로방스 특유의 여유와 아름다움을 배웠다.

느릿느릿, 어슬렁어슬렁 같은 의태어가 잘 어울리는 도시 베를린에서 나는 한번도 서두르거나 긴장하거나 허둥대지 않았다. 느릿느릿, 어슬렁어슬렁, 이런 한가로운 의태어가 의외로 잘 어울리는 도시가 바로 베를린이었다. 당시에는 직항이 없어 네덜란드 스키폴 공항을 경유하여 베를린 공항에 내리자마자 나는 그 한산함과 여유로움에 오히려 당황했다. 여기가 과연 국제공항이 맞나 싶었다. 런던이나 뉴욕의 공항에서 겪는 까다로운 입국 수속에 비하면 베를린의 공항은 그야말로 심플하기 이를 데 없었다. 뉴욕의 존 에프 케네디 공항에서 나는 1시간 넘게 기다란 ‘외국인 전용 입국 수속’ 라인에 서서 기다려야 했고, 런던의 히스로 공항에서는 ‘런던에 도대체 왜 왔냐, 같이 온 사람과는 어떤 사이냐’고 꼬치꼬치 캐묻는 공항 직원의 질문 공세에 시달려야 했다. 그런데 베를린에서는 비행기에서 내려 짐을 찾아 밖으로 나오기까지 10분밖에 걸리지 않았다. 누구도 불친절하지 않았고, 불필요한 질문도 없었다. 세상 모든 공항이 그렇다면 우리 여행자들의 발걸음은 훨씬 가볍고 자유로울 텐데. 그렇게 한결 가벼운 마음으로 시작된 나의 베를린 여행은 시작부터 끝까지 그야말로 여유롭고 편안했다. 베를린도 런던이나 뉴욕처럼 분명 대도시인데 전혀 복잡하거나 바쁘거나 빡빡하게 느껴지지가 않았다.

물론 베를린을 ‘며칠 안에 다 훑어보자’라는 야심찬 계획이 없기 때문이기도 했다. 나는 몇 다리 건너 알게 된 독일 유학생의 하숙집을 빌려 무려 5주나 베를린에 머물기로 했다. 무거운 짐을 끌고 숙소를 계속 옮겨 다니는 여행에 지쳐, 일단 베를린의 저렴한 하숙집에 베이스캠프를 두고 주말마다 다른 도시로 나들이를 다녀오는 여행 방식을 택했다. 5주간의 하숙비가 딱 60만 원인데다 방도 매우 커서 한국의 웬만한 원룸보다도 실속 있었다.

5개의 박물관을 품은 박물관 섬

나는 우선 ‘베를린 박물관 투어’를 먼저 해보기로 했다. 첫 유럽 여행 때 급하게 단체 여행으로 다녀온 터라 ‘여기 조금 더 천천히 구경하고 싶은데’라는 아쉬움을 가득 남긴 곳, 바로 베를린의 ‘박물관 섬(Museumsinsel)’이었다. 동서양의 고대 유적이 가득한 페르가몬 박물관, 박물관 건축 자체가 그리스 양식으로 지어진 구 박물관, 고색창연한 이집트 유물로 가득한 신 박물관, 서양 회화의 걸작들이 모여 있는 국립 회화관, 비잔틴 미술의 절정기를 감상해 볼 수 있는 보데 미술관이 한꺼번에 모여 있는 곳이다.

베를린의 운터덴 린덴 지역에 있는 박물관 섬의 하이라이트는 페르가몬 박물관이다. 중앙 홀의 거대한 신전과 페르시아 유적은 세계의 다른 어떤 박물관에서도 볼 수 없는 압도적인 스펙터클을 연출한다. 페르가몬 박물관의 그리스 신전 계단에 앉아 생각에 잠기면 5분도 채 되지 않아 수천 년 전의 신화적 시간 속으로 타임머신을 탄 듯한 환상을 생생하게 느낄 수가 있다. 박물관 섬의 또 다른 하이라이트는 클레오파트라 못지않게 이집트 최고의 권력을 휘둘렀던 왕비, 네페르티티의 흉상이다. 베를린 신박물관에 들어가면 사람들이 마치 루브르 박물관에서 모나리자를 보러 달려가듯이 네페르티티 흉상을 향해 직진한다.

분열과 통합의 상징, 브란덴부르크 문 베를린 최고의 역사적 기념물은 브란덴부르크 문이다. 건축가 카를 랑하우스가 그리스의 아테네 신전을 본떠 만들었지만 단순한 모방에 그치지 않고 거리의 탁 트인 전망과 자연스럽게 어우러져 베를린의 둘도 없는 상징물이 되었다. 브란덴부르크 문은 한때 분열된 독일의 상처를 간직한 아픈 상징물이었다. 과거에는 프로이센의 영광스런 승리의 역사를 상징하던 브란덴부르크 문이 독일의 분열 당시에는 서베를린과 동베를린을 나누는 경계가 되었던 것이다. 브란덴부르크문은 프로이센 제국의 승리의 상징에서 분열된 독일의 상징을 거쳐 이제는 통합과 평화의 상징으로 거듭났다. 사실 이런 역사적 의미만큼이나 눈길을 끄는 것은 이 주변에 몰려드는 온갖 사람들의 다채로운 사람살이의 풍경이다. 인력거를 끄는 사람, 쌍두마차를 타는 사람, 온몸에 페인트를 칠하고 행위 예술을 하며 여행자들과 사진을 찍는 사람, 서커스를 하는 사람 등 수많은 인간 군상이 만화경처럼 펼쳐지는 브란덴부르크 광장은 언제 다시 봐도 질리지 않는 풍경을 펼쳐 보여준다.

살해당한 유럽의 유대인을 위한 홀로코스트 추모비 베를린에 갈 때마다 꼭 방문하게 되는 곳이 바로 홀로코스트 추모비다.
이 추모비의 정식 명칭은 ‘살해당한 유럽의 유대인 추모비’이다. 거대한 추모비 아래로 이어지는 지하 계단 저편에는 유대인 학살의 역사를 반성하는 박물관이 이어져 있다. 석관들의 높이는 저마다 다른데 어떤 석관들은 여러 사람들이 삼삼오오 모여 앉아 토론을 해도 좋을 만큼 나지막하다.
이 장엄한 풍경을 바라보며 역사의 트라우마를 성찰하고 토론하는 시간을 가질 수 있도록. 철없는 아이들은 이 슬픈 상징물의 의미를 모르는지 징검다리 건너듯 석관에서 석관으로 폴짝폴짝 뛰어다니지만, 언젠가 저 아이들도 알게 되지 않을까.

베를린의 최고 알짜배기 땅에 일부 시민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독일인의 뼈아픈 역사적 상처를 추모하는 거대한 공간을 만든 이유를.

동독의 향수가 남아있는포츠담 광장

굳이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여기가 바로 베를린이구나’ 싶은 느낌을 강렬하게 전해 주는 곳이 바로 포츠담 광장(Potsdamer Platz)이다. 한쪽에선 각종 집회가 열리고 있고, 한쪽에선 옛 동독의 가상 스탬프를 여권에 찍어 주는 퍼포먼스가 일어나는 곳. 이제는 사라진 나라 동독의 여권 스탬프를 찍어 주며 ‘1유로’를 받는 동독 군인 복장의 배우들이 무너진 베를린 장벽의 한 귀퉁이를 떼어낸 조형물 아래서 환하게 웃고 있었다. 어느 나라 사람이 무슨 표어를 들고 있어도 자연스러워 보이는 곳이다. 독일 분단 당시에는 쇠락한 광장이었지만 지금은 파리의 퐁피두 센터로 유명한 로렌조 피아노의 혁신적인 건축 디자인으로 완전히 탈바꿈한 베를린의 최고 랜드 마크가 되었다. 이제는 온갖 예술가들이 자신의 재능을 시험하는 ‘거리의 미술관’으로 탈바꿈한 옛 베를린 장벽도 베를린에서 빠뜨릴 수 없는 관광지로 자리 잡았다.


틸파크, 말로우 그리고 브레히트 묘지 물론 이런 거대한 랜드 마크들도 좋지만, 유명한 장소는 아니더라도 베를린에는 내 마음의 랜드 마크가 세 곳이나 있다. 아무리 정신없는 대도시라도 대자연의 위대한 숨결을 담아낼 수 있음을 증언하는 아름다운 공원 틸파크(Thielpark), 내가 머물렀던 베를린 북쪽 외곽의 작은 마을 말로우(Mahlow), 그리고 브레히트의 묘지다. 베를린 자유대학 근처의 틸파크에는 관광객보다 현지인들이 많다. 베를린 사람들이 어떻게 자연과 벗하며 살아가는지를 느낄 수 있는 곳이다. 틸파크는 공원이라는 느낌보다 ‘숲’이라는 느낌이 더 강하다. 공원으로 들어가는 순간 드넓게 펼쳐지는 거대한 숲의 청신한 에너지를 느낄 수 있고, 거울처럼 맑은 호수에 충동적으로 뛰어들어 수영을 즐기는 사람들도 많다.
말로우는 분명 행정 구역상 베를린인데도 대도시의 느낌이 전혀 들지 않고 그림 같은 전원주택들과 울창한 숲, 게다가 조랑말들이 뛰어노는 목장까지 펼쳐져 있는 신기한 곳이다. 나는 매일 베를린 시내에서 이곳저곳 쏘다니다가 밤이 되면 마치 한적한 시골길 같은 말로우의 하숙집으로 돌아오며 깊은 안도감을 느꼈다.

브레히트의 묘지는 베를린 미테(Berlin-Mitte) 구역에 위치해 있다. 베를린에서 ‘이제 중요한 곳들은 다 봤다’고 느꼈을 때쯤, 지도 한구석에 정말 조그맣게 브레히트 묘지가 보였다. 위대한 극작가의 묘지라 화려한 묘비나 떠들썩한 꽃다발의 행렬을 상상했지만, 너무나도 검소하고 소박하게 그냥 ‘베르톨트 브레히트’만 적혀 있는 비석만이 오롯이 서 있었다. 아내와 함께 영면한 브레히트는 이렇게 속삭이는 것 같았다. ‘무덤의 화려한 장식이 뭐 그리 중요하겠소. 당신이 머나먼 한국에서 여기까지 찾아와주니 나는 그저 반갑소.’

‘바쁨’ 때문에 삶의 중요한 것을 포기하지 말자

베를린에서 내가 ‘휘게라이프’의 행복을 느낄 수 있었던 이유는 ‘빨리빨리’의 습관을 자연스럽게 버릴 수 있었기 때문이다. 복잡하게 돌아가는 듯 보이는 대도시에서도 그런 느릿느릿한 삶이 가능하다는 것을 나는 베를린을 통해 배울 수 있었다.
완벽한 스케줄 표를 먼저 세워 놓고 어떻게든 그것에 내 몸을 끼워 맞추려 했던 과거와 달리, 베를린에서 나는 내 몸과 마음에 스케줄을 맞췄다. 사실 스케줄이라는 게 거의 없었다. ‘오늘은 여길 가야겠다’는 생각도 없이 숙소를 나와 하염없이 걸어 다닌 적도 많았다. 나는 끊임없이 무리한 계획을 짜고 ‘그 계획과 목적에 부합하지 못하는 내 삶’을 질책해 왔던 것이다. 베를린에 다녀온 뒤 나는 일정표를 짜는 일을 그만두었다. 그냥 최소한의 약속과 원고 마감 일자만 휴대전화 달력에 표시해 놓고, 나머지 시간은 그날그날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살자’고 마음먹었다.
베를린의 뜻하지 않은 휘게 라이프는 내 삶을 바꾸어 놓은 것이다. ‘도저히 몸이 따라주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 때는 과감히 스케줄을 포기하기도 한다. 아직도 덴마크 사람들이 말하는 휘게 라이프의 이상향에 다다르려면 한참 멀었지만, 더 이상 ‘바쁨’ 때문에 삶의 중요한 것을 포기하는 일은 없었으면 좋겠다. 바쁘다는 것은 외부의 스케줄에 내 삶을 저당 잡힌 상태이며 지나친 분주함은 결국 삶에서 소중한 것들을 희생하도록 강요하기 때문이다.
베를린에 머무는 동안 나는 처음으로 집이 아닌 곳을 ‘집처럼’ 느꼈다. 요리도 하고 빨래도 하고 청소도 하면서 여행자가 아니라 현지인처럼 살았다. 이방인의 눈으로 허둥지둥 돌아다니기보다는 마치 익숙한 마을 주민처럼 골목골목을 어슬렁거리며 우리 동네 산책하듯 베를린 곳곳을 쏘다니던 그 느낌이 참으로 아늑했다. ‘내가 계속 글을 쓰며 살아갈 수 있을까’하는 공포와 불안에 시달리던 때였지만, 베를린에서 생각을 가다듬으며 조용히 지내보니 신기하게도 마음이 편안해졌다. 조금 더 욕심을 줄이고, 느리지만 담대하게 한 발 한 발 앞으로 나아갈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삶이 문득 힘겹게 느껴질 때,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 삶을 새로 시작할 수 있는 용기를 얻는 것이야말로 여행이 우리에게 주는 최고의 선물이다.

글. 정여울 작가.
<나를 돌보지 않는 나에게>, <늘 괜찮다 말하는 당신에게>, <내가 사랑한 유럽top10>, <그때 알았더라면 좋았을 것들> 저자.
KBS1라디오 ‘백은하의 영화관, 정여울의 도서관’ 진행자.
사진. 이승원, 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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