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생활 비타민

송년의 계절
술에 취하나, 분위기에 취하지

‘회식 후 귀갓길에 당한 교통사고는 산재라는 법원 판결이 있었다. 회식도 이제는 업무로 인정받는 분위기라지만 마냥 반갑지만은 않으 소식이다. 아무리 업무의 연장이라곤 하지만 ‘윗사람’ 눈치 보는 회식은 가능하면 빠지고 싶은 게 직장인들의 솔직한 심정이 아닐까. 바야흐로 송년회식의 계절이 돌아왔다. 1년 내내 소홀했던 인간관계를 12월 한 달 동안 만회하기 위해 달리고 또 달리는 것이 과연 의미있는 일일까?

백약지장, 술이여 백약지장(百藥之長)은 ‘온갖 약 가운데 으뜸인 약’이라는 듯으로 술을 지칭하는 말이다. 동의보감에서는 술을 상약 중의 상약이라고 기록하고 있다. 동의보감에서 가장 많이 나오는 약재도 바로 술이다. ‘약방의 감초’라는 감초에 대한 언급보다도 훨씬 더 많이 언급되고 있다.

의술을 뜻하는 한자 의(醫)에도 술을 의미하는 酉가 붙어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동의보감에서 언급한대로 술이 약이라면 술만큼 약효가 빠르고 강력한 것이 드물다. 마시면 바로 심장이 뛰거나 얼굴이 붉어지거나 감정이 변하는 등의 효과가 나타난다. 이러한 약효를 적절히 조절하면 혈맥을 통하여 피부를 좋게 하고 소화기관을 두텁게 하고 우울함도 덜어 주게 만든다.
예로부터 한약을 복용할 때 술과 함께 복용하거나 술로 빚어서 복용할 것을 권하는 이유도 이처럼 약효가 빠르게 나타나기 때문이다. 그래서 귀한 약재는 보통 술에 담가 먹었다.

광복 이후 송년회 변천의 역사

진(晋)나라의 사서 삼국지의 위지(魏志) 동이전(東夷傳)에는 “동이 사람들은 농사 절기에 맞추어 하늘에 제사하고 밤낮으로 음주가무를 즐겼다”는 기록이 있다. 동이족의 술사랑이 각별했음을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다. 그러나 지금과 같은 ‘부어라마셔라’ 음주문화가 이것 때문이라고 할 수는 없다. 오히려 향음주례의 유교전통을 강조했으나 일제 강점기와 급속한 산업화 과정에서 한국 고유의 술 문화가 사라졌다.
광복 직후에는 연말이면 일제 강점기의 고생과 치욕을 잊자며 부어라마셔라 했다는데 그때는 송년회가 아니라 망년회였다. 1960년대에도 ‘꼭지가 돌 때까지’ 마셔야 궂은 일이 사라진다며 술을 많이 마셔 ‘술년회’라고 불릴 정도였다. 1970년대 들어서는 망년회가 더 고약해졌다. 발바닥에 땀나도록 일했으니 구두에 술을 따라 마시며 한 해를 정리해야 액땜을 한다는 풍습도 이때에 생겨났다.
일본식 표현인 망년회가 송년회로 이름이 바뀐 것은 1980년대 들어서이다.

소홀했던 인간관계 12월에 몰아서 만회하자 술생술사로 일관하던 직장인들의 송년회 문화가 바뀌기 시작한 것은 꽤 여러 해 되었다. 먹고 마시는 대신 문화를 나누고 온정을 전하며 취미생활을 공유하는 형태로의 움직임이다.
직장인들은 ‘송구영신(送舊迎新)’을 위해 팀과 본부, 회사 전체 등 여러 단계의 회식 자리에 참여한다. 물론 송년 회식의 애초 취지는 1년간 쌓인 회포를 풀자는 좋은 뜻에 있다.
송년회식, 직장 동료들과 함께 한해를 마무리하는 자리라는 좋은 취지에는 이견이 없다. 그러나 1년 내내 소홀했던 인간관계를 12월 한 달 동안 만회하기 위해 달리고 또 달리는 것이 과연 의미있는 일일까라는 회의도 드는 것이 사실이다. 특히나 술 좋아하는 상사의 손에 이끌리어 한겨울 밤거리로 내몰리는 신세의 직장인이라면 더 서글프다. 다행히 이런 송년문화가 변하고 있으니 반가운 일이다. 사회복지시설을 찾아 봉사활동을 하며 한해를 마무리하는 움직임이 생겨나기 시작한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해마다 술 소비량은 줄어들지 않는다고 하니 아이러니하다. 한 가지 더 기억하자. 우리 선조들은 한 해의 마지막 달을 과거를 돌아보고 빚진 것을 모두 갚는 달로 삼았다고 한다. 정월 대보름까지는 빚을 받으러 가지 않는 것이 관례였기 때문이다. 우리도 올해를 보내기 전에는 누구에게 빚진 것은 없는지부터 살펴보는 여유를 가져보자.

음주문화도 송년회도 바뀌고 있다.

고전적인 송년회에 직격탄이 된 건 ‘주 52시간 근무제’ 도입이다. 2018년 7월 1일부터 300인 이상 사업장에서 주 52시간 근무제가 시행되면서 자연스럽게 야근 문화가 사라졌다.
“일 끝나고 한잔하자”는 이야기도 거짓말처럼 쏙 들어갔다. 주 52시간 근무제 정착에 따라 일과 생활이 양립할 수 있도록 송년회를 자제하는 분위기가 여느 해보다 강화되었다. 게다가 미투운동 등의 사회적 분위기와 일과 삶의 균형을 중요하게 여기는 ‘워라밸(work and life balance)’ 트렌드도 한몫했다.
덕분에 ‘부어라! 마셔라!’ 식의 회식이 아닌 다양한 이벤트로 직원들의 단합을 도모하는 송년회가 자리잡아가고 있다. 점심 때 모여 맛있는 음식을 먹거나 밤 9시면 '땡'하는 '신데렐라 송년회'도 반가운 현상이다. 사회복지시설을 찾아 봉사활동을 하며 한해를 마무리하는 움직임이 생겨나기 시작한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해마다 술 소비량은 줄어들지 않는다고 하니 아이러니하다. 한 가지 더 기억하자. 우리 선조들은 한 해의 마지막 달을 과거를 돌아보고 빚진 것을 모두 갚는 달로 삼았다고 한다. 정월 대보름까지는 빚을 받으러 가지 않는 것이 관례였기 때문이다. 우리도 올해를 보내기 전에는 누구에게 빚진 것은 없는지부터 살펴보는 여유를 가져보자.

글. 편집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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