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품으로 보는 역사

뜨거우니 호~ 불어 호빵

추운 겨울이 되면 사람들이 많이 찾는 호빵. 지금은 널리 알려진 사실 하나인데 호빵은 사실 찐빵의 ‘브랜드명’이다. 1971년 삼립식품이 내놓은 찐빵의 제품명이 ‘호빵’이었고 이것이 워낙 성공을 거두면서 ‘찐빵=호빵’이 됐다. 마치 우리가 즉석밥을 ‘햇반’이라고 부르는 것과 마찬가지다. 호빵이라는 이름은 찜기에 쪄서 뜨거우니 ‘호~’불어서 먹으라는 데서 왔다고 한다.

찐빵이야, 호빵이야? 그런데 가만히 따져보면 ‘찐빵≠호빵’이다. ‘찐빵’이라는 이름은 빵을 만드는 방식을 말하기 때문이다. 마치 ‘김치찜’처럼 말이다. 밀가루 반죽에 이스트를 넣고 오븐에 구워서 먹는 것을 서양에서 빵이라고 부르는데 우리 동양 문화권에서는 밀가루 반죽을 증기에 쪄서 만들어 먹었다. 우리가 중식당에서 고추잡채와 같이 먹는 ‘꽃빵’이 대표적인 동양문화권의 찐빵이다. 그렇다면 찐빵 속에 팥, 야채, 피자 같은 ‘앙꼬’가 들어있는 이 빵은 대체 뭐라고 불러야할까.
재미있는 사실 하나. 한국, 중국, 일본 식당에서 한자로 饅頭(만두)를 주문하면 무엇이 나올까? 우리나라에서는 당연히 우리에게 익숙한 ‘만두’가 나온다. 그런데 일본에서는 화과자의 일종인 만주가 나온다. 길거리에서 파는 바로 그 만주다. 반면, 중국에서는 바로 우리에게는 찐빵처럼 보이는 것이 나온다. 다만 안에 소가 없다는 점이 차이다.

회사는 사라져도 펭귄 브랜드는 살아남아 중국에서는 찐빵인데 고기와 같은 소가 들어있는 것은 빠오즈(包子)라고 한다. 한자 그대로 읽으면 ‘포자’다. 반면 팥이 들어있는 빠오즈는 더우샤빠오(豆沙包)라고 한다고 한다. 그런데 일본에 가도 고기나 팥이 들어있는 빠오즈 같은 찐빵을 판다.
이런 찐빵이 일본에서 대중화된 것은 1920년대라고 한다. 그 이전에도 일본에서는 화교들이 먹는 찐빵을 추카망(中華まん)이라고 불렀다. 망이라는 단어는 만두에서 온 것으로 말 그대로 중화만두다.
나카무라야라는 식품회사에서 이를 대량생산해 일본인들을 대상으로 판매해서 큰 인기를 얻었고 이후 팥 찐빵은 앙망(あんまん), 고기 찐빵은 니쿠망(肉まん)으로 불리며 대중적인 식품이 됐다.
팥이 들어있는 찐빵이 중국과 일본 중 어디서 먼저 시작되었는지는 정확하지는 않다. 하지만 확실한 것은 만두와 찐빵은 중국에서 시작돼 동아시아에 널리 퍼진 음식이라는 것이다.

한국인의 국민 겨울간식, 삼립호빵의 탄생 1930년대 우리나라 신문을 보면 찐빵을 만드는 법에 대한 기사가 나온다. 하지만 이때의 찐빵은 안에 소가 들어가는 것이 아닌 정말 말 그대로 ‘찐빵’인 것으로 보인다.
호빵이 한국인의 대표적인 겨울 음식이 된 것은 1970년대 들어서다. 당시 국내 제빵시장 1위인 삼립식품이 호빵이라는 이름의 ‘찐빵’을 출시했기 때문이다. 당연히 호빵은 일본의 앙망(팥 찐빵)을 한국에 가져온 음식이었다. SPC그룹에 따르면 일반적인 빵의 판매가 줄어드는 겨울 에 매출을 높이기 위해 내놓은 것이 호빵이었다.
호빵은 처음에는 가정에서 만들어 먹는 용으로 1봉에 5개 들이로 판매됐는데 1972년부터 슈퍼마켓 등 판매처에서 직접 쪄서 판매하기 시작했다. 삼립식품은 판매를 위해 매장에 호빵 판매용 찜통을 공급했는데 이것이 지금 호빵이 겨울을 상징하는 제품이 된 결정적인 이유다.
추운 겨울 길거리를 돌아다니다가 언제든 슈퍼마켓 등에서 따뜻한 호빵을 먹을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지금은 슈퍼마켓이 아니라 골목골목마다 있는 편의점 찜통에서 호빵이 판매되고 있다. 이 찜통 덕분에 삼립 호빵은 호빵시장을 완전히 장악해 버렸다. 현재도 SPC삼립의 찐빵시장 점유율은 80%에 달한다. 지난 호빵 시즌 매출액이 950억 원에 달했다.

호빵 속의 무한 변신 한국의 찐빵은 중국과 일본인들이 혀를 내두를 만큼 찐빵에 다양한 시도를 하고 있다. 1980년대부터 이미 야채, 쑥, 옥수수 등을 넣어서 팔기 시작했던 삼립은 매 시즌마다 실험적인 호빵을 내놓고 있다.
지금까지 호빵의 속에 넣었던 재료로는 피자, 카레, 소시지, 흑미, 김치, 오곡, 단호박, 불고기, 칠리, 불닭, 초콜릿, 양파, 검은깨두부, 복분자, 밤, 고구마, 깐풍기, 맥앤치즈, 짬뽕, 짜장, 커스터드 크림, 크림단팥 등 이루 열거하기도 벅찰 정도로 많았다. 심지어 빵 자체에도 다양한 시도를 했다. 빵에 호두, 해바라기 씨, 호박씨 등 견과류를 넣거나 우유나 고구마, 옥수수를 넣기도 했다. 이스트 대신 천연효모를 쓰기도 했다.
올해 겨울에는 이천쌀로 만든 쌀 커스터드 크림을 넣은 ‘이천쌀호빵’, 순창고추장으로 볶아낸 돼지고기를 넣은 ‘순창고추장호빵’, 부산의 명물 씨앗호떡을 응용한 ‘씨앗호떡호빵’, 단호박 앙금과 진한 크림치즈 커스터드를 넣은 ‘단호박크림치즈호빵’, 호빵 속에 쫄깃한 찹쌀떡을 넣은 ‘떡방아호빵’이 새로 나온다.

크기를 키워 아예 식사대용으로 쓸 수 있는 호빵도 몇 년 전 나왔다. 소시지와 채소를 넣거나 스테이크, 떡갈비 등을 속에 넣은 것이다. 한 편의점 분석 자료에 의하면, 단팥 호빵의 판매 비중은 2016년만 해도 절반 이상이었지만 작년에는 30% 정도로 떨어졌다.

호빵과 K-푸드 호빵의 역사를 이렇게 정리해보면 호빵은 찐빵과 완전히 다른 음식이다. 찐빵을 영어로 번역한다면 ‘steamed bread'다. 모든 종류의 쪄서 만든 빵이 찐빵이다. 안에 고기가 들어간 중국식 찐빵은 ‘baozi’, 팥 찐빵은 ‘dou sha bao'라고 번역되지만 이 두 가지는 우리가 한국에서 먹는 호빵과는 다르다.
CJ제일제당은 한국에서 크게 히트한 ‘비비고 만두’를 미국에서 ‘dumpling’이 아니라 ‘mandu’라는 이름으로 판매하고 있다. 서양사람들에게 익숙한 표현인 ‘dumpling'대신에 ‘만두’를 사용하는 이유는 이 만두가 중국의 ‘딤섬’이나 ‘쟈오즈(귀 모양의 만두)’와도 다르고 일본의 ‘교자(쟈오즈에서 나온 일본식 만두)’와도 다르기 때문이다.
한국의 ‘호빵’도 지금은 ‘빠오즈’나 ‘추카망’과는 다른 식품이라고 볼 수 있다. 그렇다면 호빵의 영문명은 ‘hoppang'이 될 수밖에 없다.
지금까지 이 코너에서 다뤘던 설탕과 밀가루, 탄산음료, 커피, 통조림 등은 모두 서양에서 전파된 식품이었다. 서양의 식문화가 근대화와 함께 일본을 거쳐 한국에 상륙했고 시간이 지나 이 제품들은 한국식으로 식품으로 변했다. 한국적인 탄산음료(칠성사이다), 한국적인 커피(커피믹스)가 나왔지만 이 제품을 들고 해외에 진출하기엔 오리지널리티가 약하다. 일본의 ‘기무치’를 한국에서 인정하기 어려운 것처럼 말이다.


글 : 이덕주 기자(매일경제신문)
사진제공 : 삼립식품

다른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