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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패하거나 발효하거나

발효의 과학

우리는 매일 발효음식을 먹는다. 발효는 우리에게 너무나 친숙하지만 그것이 무엇인지 정확하게 정의하기는 쉽지 않다. 흔히 미생물을 이용해 유기물을 분해하는 과정에서 인간에게 유리한 물질이 만들어지면 발효라 하고 악취가 나거나 유해한 물질이 만들어지면 부패라고 한다. 그런데 그 유용한 물질은 생각보다 단순하다. 젖산과 알코올이다.

탄수화물(전분)을 분해하면 포도당이 되고, 포도당을 분해하면 피루브산이 된다. 산소가 없으면 피루브산이 젖산으로 바뀌면서 끝나고, 산소가 있으면 크렙스회로를 통해 물과 이산화탄소로 완전히 연소되면서 많은 ATP가 합성된다. 독성물질이나 악취가 발생하면 강한 의미에서 부패이고, 이산화탄소로 완전히 연소되어 손실만 있어도 부패이다.

산 발효, 식품 보존의 수단으로 이런 관점에서 보면 발효는 너무나 단순하다. 더구나 포도당에서 젖산이 만들어지는 것은 모든 생명에 공통적인 대사 방식이다. 광합성을 하는 생명이 탄생하기 전에 지구에는 산소가 없었고, 무산소호흡인 젖산 발효가 일어난다. 젖산은 유산균만 만드는 것이 아니라 인간을 포함한 모든 생명체가 만들 수 있다. 우리가 심하게 운동을 하면 산소가 부족하게 되고, 우리 몸은 젖산발효를 통해서라도 에너지(ATP)를 생산한다. 단지 산소를 이용한 완전연소에 비해 에너지의 생산량이 1/15 이하여서 한계가 분명하다.
젖산발효는 식품 보존의 수단으로 유용하다. 세상에는 셀 수도 없이 많은 종류의 세균이 있다. 세균은 20분마다 2배로 증식할 정도 증식속도가 빠르다. 따라서 어떠한 음식이든 세균이 마음껏 자라면 하루 안에 음식은 완전히 쓸모없는 것이 되고 만다. 유산균이 만든 젖산은 세균의 증식을 막는다. 그래서 식품의 보존성을 획기적으론 높여준다.

김치와 요구르트, 치즈 같은 것이 젖산을 통해 보존성이 유지되는 식품이다. 지금은 냉장고 등 식품을 보존하는 수단이 많아졌지만 과거에 식품의 보존성을 높이는 것은 생존의 절대적인 기술이었다. 그리고 유산균은 우리 몸의 장내 미생물의 성장을 조정하는 정균작용도 한다.

술 발효, 잡균의 증식을 막아 젖산발효보다 역사가 깊은 발효가 술(에틸올) 발효이다. 효모는 특이하게 산소가 있어도 산소를 이용한 대사보다 무산소 상태의 발효를 좋아하는 종류(Saccharomyces cerevisiae)가 있다. 산소를 이용하면 15배의 에너지를 만들 수 있는 회로를 가지고 있는데도 굳이 그 경로를 수행하지 않고 고작 2ATP만을 생산하는 알코올 발효에서 멈추는 것이 언뜻 이해하기 힘들지만, 먹이경쟁이라는 측면에서는 이해가 가능하다. 포도당이 충분히 있으면 그것을 이산화탄소로 완전히 연소시키지 않고 알코올을 만드는데서 멈추면 다른 잡균의 증식을 막을 수 있다. 효모에는 알코올 내성이 있어서 고농도의 알코올에 견딜 수 있으므로 알코올을 비축하여 먹이를 독점하는 것이다. 사실 포도당에서 피루브산으로 분해하는 과정은 에너지 생산은 적지만 쉽고 빠르다. 그리고 피루브산을 TCA회로를 이용하여 완전히 연소하는 것은 에너지 생산은 훨씬 많지만 힘들고 복잡한 과정이다. 포도당만 많다면 굳이 완전연소를 고집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암세포도 산화적 대사를 통한 완전한 연소보다는 산소를 활용하지 않는 대사를 선호하여 대량의 포도당을 소비한다. 일부 미생물들이 식량을 독점하겠다는 나름 이기적인 행동이 인간에게는 유용한 발효가 되는 것이다. 미생물에게 식량의 일부를 내어주는 대신 보존성과 맛과 향을 얻는다.

초산 발효, 강력한 미생물 성장 억제효과 식초를 만드는 초산발효는 좀 더 극한의 모습을 보여준다. 초산균은 다른 세균들은 별로 탐하지 않는 알코올(6% 전후)을 식량 삼아 에너지를 생산한다. 알코올을 완전히 분해하면 많은 에너지를 생산할 텐데, 딱 2단계만 진행하여 초산을 만드는 것에서 멈춘다. 초산은 젖산이나 알코올보다 미생물 성장을 억제하는 힘이 강하다. 초산균은 특별한 대사기작과 초산 배출회로를 가져서 고농도의 초산을 견디지만, 다른 경쟁자는 견디지 못한다. 식량을 독점하는 것이다. 초산균은 알코올을 전부 소진하여 더 이상 먹을 것이 없으면 초산을 에너지원으로 먹어치운다. 시큼한 식초가 맹물이 되는 것이다. 식초가 남는 것은 발효고 맹물이 되는 것은 부패다.

맛있는 발효가 중요 발효는 이처럼 이론적으로는 단순하지만, 좋은 발효제품을 만드는 것은 정말 어렵다. 우리가 원하는 것은 젖산이나 알코올이 아니라 맛있는 음식이기 때문이다. 원료와 미생물의 종류, 생육조건 등에 따라 만들어지는 향기 물질과 맛 물질은 완전히 달라진다. 향은 0.1%도 안 되는 미량이고 개별적 성분을 따지면 백만분의 일ppm 수준의 초미량이지만 우리의 코는 ppb~ppt 단위의 미량에도 반응하는 예민한 것이라, 향에 따라 제품의 평가가 완전히 달라진다. 향만큼 다양한 제품이 있고, 향만큼 다양한 어려움이 있다.

발효차와 장류, 단백질 분해로 감칠맛 깊어져 그럼 간장, 된장, 고추장 같은 장류는 무엇이고 발효차는 무엇일까? 발효차는 미생물을 키워서 하는 발효가 아니라 차 잎에 함유된 효소에 의해 산화한 것이라 진정한 발효는 아니다.
통상 탄수화물(포도당)을 분해하는 것이 발효인데 간장과 된장의 원료가 되는 콩에는 탄수화물은 별로 없고 단백질이 많다. 그리고 맛의 핵심도 탄수화물이 아니고 단백질의 분해이다. 전통적인 방식으로 만든 간장은 단백질의 50% 정도가 분해되고, 양조간장은 효율이 높아 80%가 분해된다. 미생물이 내놓은 단백질 분해효소로 단백질이 분해되면 감칠맛이 깊어진다. 단백질은 아미노산이 수백 개 결합한 것이라 맛으로 감각할 수 없지만 아미노산으로 분해되면 맛으로 느낄 수 있다. 치즈가 그렇게 인기인 것은 우유에 비해 감칠맛의 핵심 성분인 유리글루탐산의 함량이 600배나 증가했기 때문이다. 사실 발효의 향은 순수한 탄수화물이 가장 깔끔하다. 단백질과 지방은 부패취와 유사한 향도 많이 만들어져 냄새는 별로지만 워낙 감칠맛이 매력적이라 이내 치즈의 냄새에 익숙해진다.

콩의 단백질을 분해한다는 것에는 감칠맛이 증가한다는 것 말고도 또 다른 결정적인 매력이 있다. 수많은 항(anti)영양소가 없어진다는 것이다. 콩은 단백질과 지방 등 영양이 풍부한 열매인데, 그것을 탐하는 곤충이나 초식동물로부터 자신을 보호수단이 없을 리가 없다. 콩에는 렉틴(lectin), 식물성 적혈구응집소(hemagglutinin), 우레아제(urease), 리폭시게나제(lipoxygenase), 사이안화 글루코사이드(cyanogenic glucoside)와 항비타민 인자가 있다. 그리고 모든 콩에는 일정 수준의 항트립신(단백질 분해 억제)인자가 있고 이것은 소장에서 트립신(trypsin)과 결합하여 트립신의 작용을 막는다. 콩과식물과 질소고정 박테리아 사이의 공생관계에서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 것으로 알려진 렉틴(lectin)은 소장 외막 미세융기 표면에서 당단백질(glycoprotein)에 결합하여 미세융기의 손상과 변형을 일으키고 영양소의 흡수에 심한 장애를 준다. 대두박에 포함된 우레아제는 요소를 암모니아로 분해하여 독성을 높이고, 강남콩에는 비타민 E를 파괴하는 성분이 있고, 비타민 B12와 결합하여 이용을 억제하는 성분도 있고, 알리폭시다제(alipoxidase)는 카로틴(carotene)을 분해하여 비타민 A이용성을 저하시키기도 한다.
이들은 단백질이라 분해하면 사라지고 가열하면 변성되어 기능을 잃는다. 그래서 우리는 생콩을 먹지 않고 항상 콩나물, 두부, 장류 등으로 가공해서 먹는다. 발효를 통해 단백질을 분해하면 이런 위험이 없어지고 알레르기의 위험도 크게 낮추어준다. 알레르기는 주로 단백질 같은 크고 특유의 형태가 있는 분자 때문에 생기는데 단백질을 분해하면 면역수용체가 반응할 부위가 사라진다.
발효가 부패와 다른 점은 충분한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부패는 세균의 마구잡이식 증식에 의해 일어나지만, 발효는 인간에게 유용한 산물을 많이 만드는 과정이라 미생물이 많으면 그만큼 낭비도 발생한다. 어느 정도 필요한 일꾼(미생물)을 확보하면 그들이 충분한 시간을 두고 분해를 하게 하는 것이 효율적이다. 부족하지 않고 과하지 않게 통제하면서 원하는 풍미를 구현하는 것이 발효의 기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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