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pecial Issue

맛, 향, 색까지 미생물이 만드는
발효과학

장(醬)은 천연발효 조미료로 한국 식문화의 핵심이다. 한국인의 입맛을 넘어 글로벌 식재료로 주목받고 있다. 국내 최대 규모의 발효전문 연구소로 알려진 ‘샘표 우리발효연구중심’을 찾아 한국의 대표적인 발효식품 중 하나인 장류가 어떻게 발전해 왔고 현재 어떻게 전통을 계승하며 발전하고 있는지 들어보았다.

인간에게 유익하냐 유해하냐

한국의 대표적인 발효식품인 장(醬)이 새로운 글로벌 식재료로 주목받고 있다. 발효란 미생물에 의해서 물질의 변화가 일어나는 현상을 말한다. 그래서 부패와의 차이가 무엇인지 발효에 대해 말할 때 부패와의 차이가 무엇이냐를 가장 많이 묻는다. 이에 대해 이재중 책임연구원은 “발효와 부패의 공통점은 둘 다 미생물에 의한 변화라는 점이다. 차이점은 발효는 인류에게 유익한 변화이고 부패는 유익하지 않은 변화”라고 설명한다. 다만, 부패의 발효의 기준은 개인의 기호에 따라 달라질 수도 있다고 한다.
“부패냐 아니냐에 대해서는 문화권마다 생각이 다를 수 있어요. 홍어는 한국인에게는 굉장히 좋은 발효식품이지만 대부분의 외국인들은 ‘부패한 음식’이라고 인식합니다. 청국장의 풍미를 좋아하는 사람도 있지만 혐오식품이라 여기는 사람도 있어요. 푸른곰팡이를 숙성시킨 블루치즈도 처음 접한 사람은 부패했다고 인지합니다.

이처럼 부패와 발효의 차이는 유익하느냐 유익하지 않느냐에 따른 차이도 있지만 개인의 기호에 따라서도 기준이 달라질 수 있어요. 이것이 음식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두장(豆醬) 종주국 한국의 장문화 우리나라 장 문화의 역사는 상당히 오래되었다. 장에 관한 가장 오래된 기록은 삼국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왕가에서 결혼할 때 혼수품목에 장이 포함되었다는 기록으로 보아 발효식품으로서 장의 역사는 최소 1000년은 넘었다. 샘표 우리발효연구중심 이재중 책임연구원은 우리나라 발효식품의 특징으로 ‘콩을 중심으로 한 발효식품 즉 두장(豆醬)이 발달했다’는 점을 꼽았다.
“한반도와 만주 일대가 콩의 원산지입니다. 장의 역사가 시작된 곳도 이 일대일 가능성이 높아요. 두만강의 한자 표기가 콩 두(豆)에 가득할 만(滿)자를 쓰는 것도 우연이 아닐 것입니다. 학자들마다 설이 조금씩 다르지만 메주가 일본으로 건너가 미소가 되었다는 설도 있습니다.”
콩으로 만든 두장(豆醬)은 생선으로 만든 어장(魚醬), 고기로 만든 육장(肉醬)에 비해 발효 방법이 상당히 까다롭다. 발효방식이 까다로우니 발효기술도 계속 발전할 수밖에 없었다.

“요거트는 유산균만 있으면 만들 수 있고 술은 효모라는 미생물만 있으면 발효가 됩니다. 치즈도 유산균과 곰팡이균만 있으면 발효가 가능해요. 그에 비하면 우리의 장은 곰팡이균, 고초균(볏짚 등과 같은 마른 풀에서 서식하는 균, 청국장균이라도 한다), 효모, 유산균 등 많은 미생물이 필요합니다. 전세계 어디를 돌아봐도 이렇게 다양한 종류의 미생물이 한꺼번에 작용해 만들어진 발효식품은 거의 없습니다.”
발효는 한국의 식문화에도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가장 소박한 밥상인 3첩반상에도 장은 기본으로 올라갔을 정도로 한국인의 필수 먹거리 중 하나였다. 5첩, 9첩, 12첩 등으로 상차림이 화려해질 때마다 장의 가짓수도 된장, 간장, 젓갈류 등으로 늘어났다. 또한 한국의 전통 요리 중에 장이 안 들어간 요리가 거의 없다. 장아찌류, 조림류, 국류, 나물류 등 우리나라의 전통요리 레시피에는 모두 장이 들어갔다.

한식을 넘어 서양요리에도 어울리는 장으로

아직은 장이 한식에만 쓰이는 식재료라는 고정관념이 있지만 기업에서도 한국의 장맛을 세계에 알리기 위한 노력이 다각적으로 이어지고 있다. 샘표의 경우 서양요리와 어울리는 레시피를 꾸준히 발굴하기 위한 노력을 하고 있다. 2012년부터 스페인의 알리시아 요리과학연구소(Alicia Foundation)와 공동으로 장을 활용한 레시피를 개발하고 있다. 그들의 식문화에 없었던 ‘장’을 소개하고 서구식 요리에 어떻게 접목할 수 있는지를 공동연구 중이다. 특히 요리에센스 연두는 조선간장의 특유의 향미와 진한 색을 발효 기술로 제어해 우리 장을 어렵게 생각했던 현지인들에게도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알리시아의 연구원이 말하기를 ‘당신들이 우리를 이용한다고 생각하겠지만 우리가 당신들을 이용하고 있다고 생각한다.’는 말이 인상 깊었어요. 스페인에서는 국민 건강을 위해 채소 섭취를 권장하고 있지만 국민들은 육류 중심의 식사를 선호하고 있어요. 문제는 채소가 맛이 없다는 겁니다. 맛없는 채소에 ‘맛’을 가미할 수 있는 것이 바로 한국의 장이라는 거지요. 연두의 경우 그들의 음식에 자연스럽게 활용할 수 있고 채소요리에 잘 어울려, 건강하고 맛있는 좋은 레시피를 많이 개발할 수 있었습니다. 스페인 국민들도 쉽게 활용할 수 있는 레시피를 많이 만들고 알려 건강을 도모하는 것이 공동연구의 목표라고 하더라고요.”
‘한눈에 보는 OECD보건 2015 (OECD Health at a Glance 2015)’ 보고서에 따르면 OECD 국가 중 채소 섭취 1위 국가가 바로 한국이다. 우리 식탁에서 김치류, 나물류 등의 야채 레시피가 발달할 수 있었던 것은 장을 활용해 ‘맛’을 낼 수 있었기 때문이다.

“한반도의 척박한 땅에서 먹거리를 찾다보니 채소 중심의 식단이 만들어졌겠지만 이것들을 맛있게 먹을 수 있게 된 데는 장의 역할이 매우 컸습니다. 이런 식문화가 채식에 대한 관심이 많아진 외국에서 보기에는 굉장히 건강 지향적으로 보인다고 합니다. 한국 식문화의 핵심을 장으로 보는 외국인들이 많아요.” 최근 유명한 미슐랭 셰프 중 콩발효 연두를 사용하는 이들이 늘고 있을 뿐 아니라 그들이 한결 같이 하는 말이 “평생 먹어보지 못한 맛이다”, “너무 새롭다. 장을 활용하여 어떻게든 새로운 요리를 만들어 보고 싶다”는 반응을 보인다고 한다.

전통 발효과학을 현대적 발효과학으로

장의 제조기술도 꾸준히 발전해 왔다. 특히 조선시대 들어 간장과 된장을 구분하는 ‘취청장법(取淸醬法)’이라는 제조기술이 발달했다. 그간의 장 발효가 경험의 산물이었다면 현대 들어서는 미생물학, 분자생물학, 식품공학 등과 같은 ‘과학의 영역’에서 발효기술을 발전시키고 있다. “메주 속에 있는 미생물 중에는 곰팡이, 박테리아 등 수백여 종의 미생물들이 있는데 이중에서 제일 중요한 역할을 하는 미생물을 찾아내어 더 잘 자랄 수 있도록 온도, 습도 등의 환경을 만들면 더 맛있는 장을 제조할 수 있어요.” 과거에는 ‘미생물이 발효되면 좋은 게 된다’는 두루뭉술한 개념으로 발효를 인식했다. 지금은 정말 중요한 미생물이 무엇이고 어떤 대사과정을 거치는지 그 미생물을 어떻게 활용해야 하는지에 대해 매우 과학적으로 접근하고 있다. 덕분에 오늘날의 발효기술은 맛을 잘 만드는 미생물, 향을 잘 만드는 미생물, 색을 잘 만드는 미생물까지 실현이 가능해졌다.

글. 편집실
촬영. 김재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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