낯선 길위에서

 

라틴아메리카, 그들도 우리처럼 '위로'를 꿈꾼다
라틴아메리카,
그들도 우리처럼 ‘위로’를 꿈꾼다

물끄러미 바라보기만 해도, 어쩐지 위로가 되는 풍경들이 있다. 시원하게 물보라가 흩어지는 분수 아래서 사람들이 흐르는 물을 만져보고 동전을 던지며 소원을 비는 풍경. 가파른 산등성이를 넘고 또 넘어 마침내 정상에 다다르자, 누가 먼저 시작했는지 여기저기서 ‘소원을 비는 돌멩이들’을 쌓아 올린 장엄한 돌무더기를 발견했을 때. 새까만 기왓장에 하얀 펜으로 또박또박 소원을 적어 절을 짓는 공사장에 쌓아 올린 모습을 볼 때. 이렇게 한다고 해서 꼭 소원이 이뤄지는 것은 아님을 알면서도 사람들은 돌덩이를 차곡차곡 쌓아 올리고, 소원을 비는 편지를 쓰고, 두 손 모아 기도하며 저마다 자신의 바람을 마음속으로 속삭인다.
이런 풍경들의 특징은 ‘지역성’보다 ‘보편성’이 강하다는 점이다. 스위스의 마터호른 산꼭대기에서도 네팔의 전통사원에도 한국의 사찰에서도 흔히 발견된다. 사람들은 마치 약속이라도 한 듯이 두 손을 모으고 탑 주위를 수백 번씩 돌기도 하고, 어여쁜 돌멩이를 골라 이름 모를 사람들과 함께 ‘협업’을 하며 가지런한 돌탑을 쌓아 올린다. 나는 종교가 없지만 무언가를 간절히 기원하는 사람들의 모습 자체에 매료된다. 어떤 목마름, 절실함, 타인의 시선을 아랑곳하지 않는 맹목적인 열망에 문득 가슴이 저린다. 저들도 우리처럼, 간절하게 무언가를 바라고, 기다리며, 열망하고 있구나.

울창한 산꼭대기에 자리한
거대한 예수상

리우데자네이루의 상징, 구세주 그리스도상 또한 바로 그런 친근한 이미지, 누구라도 두 손 모아 소원을 빌고 싶은 이미지로 사랑받는다. 코르코바두(Corcovado)는 포르투갈어로 곱사등이라는 뜻인데, 리우데자네이루를 상징하는 이 울창한 산의 꼭대기에는 거대한 그리스도상이 두 팔 벌려 모두를 환영하고 있다. 코르코바두산은 울창한 원시림으로 유명한 티주카국립공원 내에 존재하는데, 국립공원으로 올라가는 버스를 타면 온갖 원숭이들이 떼 지어 몰려다니며 저희끼리 속닥거리고 재주를 넘으며 여행자들에게 함박웃음을 안겨준다. 코르코바두산은 710m 정도로 높지는 않지만, 인구 600만명이 넘는 거대한 도시인 리우데자네이루를 한눈에 바라볼 수 있는 천연의 전망대로 유명하다.
무려 38m에 이르는 거대한 예수상은 마치 ‘이 세상 모든 상처 입은 자들이여, 나에게 오라’고 손짓하는 것처럼 너른 품으로 이방인들을 감싸 안아준다. 세계 곳곳에서 모여든 여행자들은 저마다 최대한 팔을 넓게 벌려 예수상을 흉내내는 ‘인증샷’을 찍느라 정신이 없는데, 그 표정들 모두 하나같이 해맑고 환하다. 지상에서 위로 올려다보며 예수상을 찍으면 마치 예수님이 슈퍼맨처럼 창공을 가르며 날아오르는 듯한 모습으로 보인다.

멕시코시티 사람들의 마음의 안식처
과달루페 대성당

리우데자네이루 사람들이 힘들 때 즐겨 찾는 마음의 피난처가 거대한 예수상이 있는 코르코바두산이라면, 멕시코시티 사람들이 지치고 외로울 때 찾기 좋은 마음의 안식처는 바로 과달루페 대성당이다. 바티칸의 성 베드로 성당에 이어 세계에서 두 번째로 성지순례자가 많은 성당인 이곳은 ‘세계 3대 성모 발현지’로도 알려져 있다. 멕시코인들처럼 건강한 구릿빛 피부를 지닌 성모 마리아의 모습을 보러 찾아오는 사람들이 워낙 많아 ‘무빙워크’를 설치, 사람들이 마리아상 옆에 몰려들지 않도록 하고 있다. 아무리 성모 마리아를 오래오래 보고 싶어도, 모두가 평등하게 무빙워크 위에 머무는 시간만큼만 바라볼 수가 있다. 과달루페의 성모 마리아를 좀 더 오래 보기 위해서는 다시 처음부터 줄을 서서 한 번 더 무빙워크에 타야만 한다. 관광객들뿐 아니라 수많은 멕시코인들로 항상 붐비는 곳이라 현지인과 여행자, 토착민과 이방인의 자연스러운 어우러짐을 느끼기에도 좋은 곳이다. 빠르게 스쳐가는 무빙워크 위에서 재빨리 사진을 찍어야 하지만, 사람들은 군말 없이 무빙워크 위에서 질서정연하게 움직이며, 나타나자마자 순식간에 멀어져가는 성모 마리아의 아스라한 미소를 안타깝게 바라본다.

거리 위에서 만난
아름다운 풍경들
종교적 성상이나 기복적 행위뿐 아니라 거리의 벤치나 시원한 맥주처럼 평범한 존재도 치유의 이미지가 될 수 있다. 멕시코시티에서 만난 거리 위의 벤치가 그랬다. 사람의 뒷모습을 닮은 그 의자는 보자마자 미소를 머금게 하는 따스함을 지니고 있었다. 나는 그 의자의 뒷모습에 반했다. 왠지 저 의자에 앉으면 누군가의 어깨에 기대는 것처럼 포근한 느낌에 사로잡힐 것 같았다. 그냥 내가 누구인지 어떤 사람인지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그저 나를 있는 그대로 한껏 안아줄 것 같은 느낌. 사람의 뒷모습을 닮은 그 의자는 따스하고 아늑한 은신처처럼 보였다. 그 의자는 마치 조건 없는 받아들임의 아름다움을 형상화한 것처럼 보였다. 오래오래 그 자리에 하염없이 널브러져 있고 싶은 느낌, 그곳에서 한참 동안 내 삶을 돌아보고 싶은 느낌을 주는 장소들은 ‘저곳이라면 우리들의 아픔이 쉬어갈 수 있겠다’는 모종의 편안한 분위기를 풍긴다.

멕시코의 매력
세가지

멕시코에서 나를 사로잡은 것은 세 가지였다. 첫째, 거리의 색깔. 둘째, 멕시칸 푸드의 매콤하고 새콤한 향기. 셋째, 멕시코 문화유적의 아름다움과 고색창연함. 첫째, 거리의 색깔은 여성들의 옷과 장신구, 건물이나 천막의 알록달록한 빛깔들, 멕시코 벽화의 아름다움 속에 생생하게 녹아 들어가 있었다. 프리다 칼로와 디에고 리베라가 그린 그림 속의 선명하고도 과감한 색채는 모두 멕시코 사람들의 일상 속에서 자연스럽게 우러나온 것이었다. 둘째, 멕시칸 푸드의 향기는 음식점뿐 아니라 거리 곳곳에서 만날 수 있다. 타코 포장마차에서 커다란 들통에 고기를 찌는 모습, 온갖 야채를 사각사각 다지는 소리, 철판에 고기를 볶아 매콤한 살사 소스를 비롯한 다채로운 소스에 버무려내는 타코의 맛과 향기는 멕시코 거리 곳곳을 지키는 파수꾼 같은 존재였다. 우리나라에서는 아직 멕시코 요리가 비싼 편인데, 엔틸라다, 퀘사디야, 부리토 등의 대표적인 멕시코 음식이 현지에서는 매우 저렴할 뿐 아니라 그 맛도 한없이 다채로웠다. 셋째, 문화유산의 유구한 역사와 경이로운 보존상태는 뜻밖의 수확이었다. 많은 문화유산이 불타거나 유실되었을 거라고 상상했지만, 기대 이상으로 아즈텍문화와 마야문화의 유산은 훌륭하게 보존되어 있었고, 그 규모와 다양성도 어마어마했다.

우리네 음식과도 비슷한
멕시코 음식

‘우라아체huarache’라는 음식은 원주민들이 신는 샌들의 종류를 닮았다는 뜻에서 이름도 그대로 붙여졌다. 샌들 바닥처럼 넓적하고 푸짐하게 생긴 이 우라아체는 토르티야 위에 선인장과 치즈를 듬뿍 얹고, 화끈하호 매콤한 양념소스를 뿌려 만들어진다. 퀘사디야는 커다란 토르티야 윙 버섯, 선인장, 고기무침, 호박꽃 등의 속재료를 골라서 넣고, 그 위에 치즈를 얹어 살짝 구워내는 요리다. 이때 뜨거운 치즈가 다른 재료 속으로 촘촘히 녹아 들어가 매우 고소한 맛을 낸다. 타코에 자주 넣어 먹는 선인장 중에 노팔(nopales)이라 불리는 두툼한 선인장 잎이 있는데, 노팔은 가시를 제거한 다음 샐러드를 만들어 먹기도 하고 퀘사디야나 우라아체에 넣어 먹기도 한다. 노팔은 피부의 트러블을 진정해주는 역할도 해서 화장품 원료로도 많이 쓰인다.
타코의 풍미를 살려주는 것은 역시 멕시코 특유의 살사 양념이다. 청국장이나 고추장이 한국요리에서 없어서는 안 될 양념인 것처럼, 온갖 살사 소스는 멕시코 음식의 향과 맛을 살리는 필수 재료다. 살사 소스를 집안에서나 식당에서나 늘 만들어야 하니, 멕시코 주방에는 늘 믹서기 소리가 요란하다. 빠르고 간편하게 살사 소스를 만들어내는 것은 멕시코 요리의 기본기다. ‘살사 베르데’라는 소스는 상큼하면서도 매콤한 맛을 내는데, 가장 대중적인 살사 소스 중 하나다. 토마티요(tomatillo: 앵두과의 채소, 토마토맛과 꽈리맛이 섞인 듯한 매콤하면서도 상큼한 채소), 실란트로(Cilantro, 미나리과의 식물로 ‘고수’라고도 한다), 마늘을 갈아서 만든 살사 베르데는 언제 먹어도 입맛을 돋운다. 통조림 살사도 맛있지만, 싱싱한 야채를 방금 갈아서 만든 살사 소스의 향미를 따라갈 수는 없다. 멕시코에서는 맥도널드 같은 햄버거 프렌차이즈점에 가도, 케찹만 있는 것이 아니라 할라페뇨 통이 따로 놓여있을 정도로 멕시코 사람들은 매운맛을 좋아한다. 그 매운 할라페뇨를 어떤 음식이든 듬뿍 넣어 먹기를 좋아하는 멕시코 사람들을 보면 우리나라의 ‘무교동낙지’나 ‘매운 떡볶이’, ‘매콤한 불닭’을 멕시코 사람들이 먹어본다면 ‘당신들과 우리는 뭔가 통한다’고 생각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진하고 화끈한 맛의
유토피아

멕시코 전통의상은 청바지도 뚫고 들어온다는 멕시코의 강한 햇살의 자외선을 차단해주는 튼튼한 천으로 만들어지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햇빛을 차단해주면서도 화려한 색감을 잃지 않는 멕시코 전통의상을 입고 엘로테나 퀘사디야를 푸짐하게 먹고 있는 사람들을 보면 ‘오늘, 지금 여기, 생생하게 살아있다는 것’이 무엇인지를 저절로 느끼게 된다. 먹기 전에는 ‘아, 이건 별로 안 먹고 싶다’는 생각이 들다가도 먹어 보면 ‘자꾸만 손이 가네’라고 느끼게 되는 음식 중에 ‘치차론’이 있었다. 치차론은 돼지껍질을 튀긴 것인데 멕시코 시장에 가면 가장 흔하게 볼 수 있는 음식이기도 하고, 멕시칸 푸드 레스토랑에 가면 마치 팝콘이나 강냉이를 주듯이 넉넉한 인심으로 많이 주는 음식이기도 하다. 돼지껍질을 튀겼다는 ‘음식의 내력’을 들으면 별로 먹고 싶지가 않지만, 막상 먹어보면 너무 맛있어서 그야말로 ‘먹고, 또 먹고, 또 먹게 되는’ 음식이다. 물론 여기에도 살사 소스를 빠뜨릴 수 없다. 그냥 먹어도 맛있지만 치차론 위에 치즈, 살사 소스 등을 한껏 뿌려 먹으면, 그 또한 또 하나의 어엿한 요리로 느껴진다.
똑같은 음식도 왠지 재래시장에서 먹으면 더 맛있게 느껴지는데, 생과일을 대여섯 개나 듬뿍 집어넣는 멕시코식 오렌지주스도 그렇다. 오렌지를 반으로 갈라 꾹꾹 눌러 짠 뒤, 이것을 플라스틱컵이 아니라 비닐봉지에 잔뜩 담고 빨대를 꽂아서 비닐봉지를 꽁꽁 묶어 준다. 플라스틱컵보다 양이 훨씬 많아 보이고, 넉넉한 시장 인심이 느껴져 맛도 더 상큼하고 달콤하게 느껴진다. 시장표 오렌지주스에 센 불에 달달 볶은 호두를 꿀이 잔뜩 담긴 쟁반에 쏟아 부어 강정처럼 묻힌 호두과자를 곁들여 먹으면 천상의 맛이 따로 없다. 멕시코 사람들은 먹는 것에 대한 인심이 워낙 후하기 때문에 ‘양이 적다’는 불만은 결코 나올 수가 없다. 시장에서 파는 과일 샐러드도 고급 레스토랑에서 메인 메뉴만큼이나 비싸게 팔리는 과일과 토핑을 아낌없이 듬뿍 얹어준다. 온갖 과일 위에 아몬드와 호두가루를 뿌리고, 생크림, 꿀, 멕시코식 고춧가루까지 뿌린 이 멕시코식 시장표 과일 샐러드를 먹고 나면 배가 불러서 밥을 못 먹을 정도다. 그야말로 ‘매콤, 달콤, 상큼, 새콤’ 등의 온갖 맛을 표현하는 표현을 하루에도 몇 번씩 흥분해서 쓰게 되는 나라가 바로 멕시코다. 뭐든지 진하고, 뭐든지 화끈하다. 멕시코인들은 한국인들 못지않게 정이 많다. 아즈텍 문명과 마야문명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는 나라, 멕시코에서 여전히 그 본연의 맛을 잃지 않은 멕시칸 푸드의 무지갯빛 칼라와 ‘온갖 양념들의 다채로운 유토피아’를 경험해 보시기를.

정여울 작가.
<마흔에 관하여>, <내가 사랑한 유럽top10>, <그때 알았더라면 좋았을 것들> 저자.
KBS1라디오 ‘백은하의 영화관, 정여울의 도서관’ 진행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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